운동도 나름 열심히 하고 식단도 신경 써서 정상 체중을 어렵게 유지하고 있는 내게, 기특함보다는 짜증과 무기력이 밀려왔다. 그렇다고 전처럼 ‘폭식을 일삼거나 담배를 주구장창 피워 대는 삶’으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다. 그건 지금보다 몸이 안 좋아지는 게 두려워서도 아니고, 그동안 해온 게 아까워서도 아니고, ‘인간의 3대 독종 중에 1대를 당당히 실행하고 있는 멋진 나’에 대한 만족감도 아니다. 단지 그 삶으로 돌아 갔을 때 별로 얻을 게 없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폭식을 일삼거나 담배를 주구장창 피워 대는 삶’이 지금보다 더 행복한 삶을 보장한다는 100% 확신이 있다면, 난 바로 깔깔이를 입고 팔리아민트 라이트를 피러 나가겠다.
다음 주 화요일에 있을 나만의 후회 ‘아 아버지 오신 김에 주말에 목욕탕이 갔다 올 걸’을 예측하고 아버지와 함께 목욕탕을 갔다. 사실 그때 부터 몸이 이상했다. 잠을 푹 잤는데도, 이미 목욕탕에서의 나는 힘이 쭈욱 빠져있었다. 뜨거운 물에서 아버지와 ‘사회에 있는 똑똑한 사람들의 사고방식’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나는 한 계단을 올라 적외선 불이 비추는, 누울 수 있는 공간을 찾았다. 그리고 피곤하고 이상해진 몸을 진정 시키기 위해 몸을 늘어뜨리는 등의 부단한 노력을 시작했다. 그렇게 한 20분간의 충분한 휴식을 취한 뒤, 올라왔던 계단을 다시 내려가 아버지의 등을 밀어드렸다. 그때 아무 힘이 없던 나는 아버지의 등을 최소한의 효도로서 밀어드리기도 벅차, 아주 대충 등을 밀어드린 뒤 이번에는 뜨거운 사우나로 향했다. 시계 안 모래알들이 모두 중력에 굴복한 것을 확인하고 사우나에서 나온 땀을 식히기 위해 냉탕으로 향했단. 그리고 1,000원 주고 산 바디워시로 몸을 씻어 마무리 한 뒤, 목욕탕을 나왔다.
창동 목욕탕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너무나 길었다. 늘 오가는 길임에도 불구하고, 그 날은 참 멀게 느껴졌다. 그래서 난 66세의 아버지의 걸음속도를 배려 않은 채 빠르게 집으로 향했다. 그리고 집에 도착한 나는 검은 후드를 머리에 뒤집어 쓴 채 바로 잠에 빠져들었다. 악몽에 미치지는 못하지만 적당히 불편한 꿈을 꾸고 일어난 나는, 몸에서 열이 난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열의 원인을 ‘그동안 든든히 먹지 못한 탄수화물’로 규정 지은 나는, 바로 배달앱을 켰고, 아버지의 의견을 물어 제육, 잔치국수, 비빔밥을 시켰다. ‘타이에놀 있어요?’ ‘쌍화탕? 그거 유통기한 확인해봤어요?, 지났죠? 어떻게 지난 것을 가지고 있을 수 있어요? 그걸 확인 못한 게 말이 돼요?’ 이렇게 배달음식이 온 후 아버지를 향한 바보 같은 화풀이를 한 후 나는 제육과 잔치 국수를 먹었다. 아버지는 나를 상대해주기 벅찼기에, 비빔밥을 들고 ‘기도 하고 먹어라’를 남기신 뒤 안방으로 사라지셨다. 그놈의 ‘기도해라’. 들을 때마다 밥 맛이 뚝 떨어진다.
그리고 일요일 아침. 몸이 제법 가벼워 진 걸 느낄 수 있었다. 분리수거를 하며 추워진 날씨를 느꼈고, 내 열병의 원인이 조금 줄어들길 바라는 마음으로, 병균이 가득하다고 짐작되는 옷가지들을 세탁기에 넣었다. 컬리에서 산 샤인머스캣, 귤, 웅렬이가 추천해 준 abc 주스등을 먹으며 몸을 회복했다. 독서도 20분 정도 하며, 중요한 부분은 노션으로 정리했다. 슬슬 추워질 날씨에 대비해야 할 것들을 생각해보기도 했다. 이제 슬슬 아껴두었던 코트를 꺼내면 되겠다. 영화 -7도 정도 부터는 그냥 패딩을 입어야지. 묵혀둔 전기장판에 냄새가 나는 지 체크해보고 냄새가 나면 세탁을 하고 잘 말린 뒤 사용해야지. 지금 내 방에서도 손이 시려운데 장갑 하나 사야할까? 곧 블랙 프라이데이니까 그때 알아보자.
그렇게 소소한 집안일과 겨울대비를 하며, 몸의 열은 서서히 식어갔다. 내일이면 다시 출근을 하고, 성장이라는 훌륭한 방패막 뒤로 또 버거운 일들을 시작하겠지. 이렇게 사는 게 맞을까? 싶을 때 오는 짜증과 열병. 물론 내 짜증과 열병은 심해질 수록 나만 손해인 것을 잘 알기에, 소소한 일상으로 금방 극복을 하긴 했지만, 여전한 공허함은 뿌리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