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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바자회로 돌아간 나


다시 만난 친구들, 6년 만의 사과, 동전 지갑

중학교 3학년 바자회 풍경이 내 눈에 펼쳐진다. 여전히 별 볼 일 없는 물건들.

삼색 털모자, 똑딱이 지갑, 미니 줄무늬 노트, 플라스틱 팽이, 16년 전 물건 그대로다.


난 미래에서 왔다. 중학생 모습이지만, 난 31살이고, 아무튼 미래에서 왔다.

몇몇 아이들이 보이는데 그 모습이 반갑다. 존경하던 황 선생님의 건강한 모습을 보니 반갑다.

미래에서 온 나는, 선생님께 속으로만 주의를 준다.


나 : ‘선생님! 앞으로 단 거 많이 드시면 안 돼요!! 나중에 당뇨로 쓰러지십니다.’

아직까지는 아이들과 선생님이 내가 미래에서 온 지 모른다. 근질근질한 내 입이 결국 못 참고 말을 시작한다.


나 : “나 미래에서 왔어! 무려 2020년에서! 지금이 2004년인가? 너희가 보기에는 같은 15살이지만, 원래 나이는 31살이야!”


고개를 돌리는 미어캣 무리처럼, 일제히 나를 쳐다본다.


나 :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지는 나도 몰라! 근데 나 진짜 미래에서 왔다니까! 민증 없이도 술 담배를 살 수 있어! 담배도 매일 1갑씩 피우고, 어른들처럼 겉으로 웃으면서 속으로 욕하기도 마음껏 할 수 있어!”


아이들이 호기심이 가득한 얼굴로 나를 둘러싼다.


아이들 : “네가 미래에서 왔다면, 우리가 나중에 어떻게 될지 알겠네?”


성진이가 내게 묻는다. 이 아이는 2주 후에 있을 외고 시험에서 떨어질 텐데.

딱한 아이. 하지만 시험 결과는 굳이 얘기하지 않는다.


나 : “응 그럼! 마음껏 물어봐 내가 알고 있는 한에서 다 얘기해 줄게”


그때, 일명 노원중 샤크라로 불렸던 미연, 원영, 희정 트리오가 자신의 미래를 알려 달라고 조른다. 


나 : “미연이는 2년 후에 캐나다로 유학을 갔다 온 다음에, 나중에 외국계 기업에서 이름을 날릴 거야!  원영이는 XX대 경제학과를 차석으로 졸업한 뒤 OO은행에 들어가고, 희정이는 유치원 선생님으로 시작해서, 나중에는 원장님이 될 거야”


바자회 강당에 환호성이 가득하다. 미래에서 온 한 아이가 자신들의 미래를 술술 이야기하는 것이 신기한가 보다. 

물론 믿을 만한 예언인지는 알 수 없지만, 지금 이 바자회의 공기 흐름에는,

내 말을 무조건적인 것으로 받아들이게 하는 뭔가가 섞여있다. 

자신의 미래에 만족하는 아이도 있고, 실망하며 울상인 친구도 있다.
그때부터 나는 100여 명의 아이들의 미래를 말해준다.

당연히 처음 본 아이도 있었지만, 대충 그 아이의 미래를 적당히 지어서 이야기해 준다.

소설과 영화를 많이 보길 잘했다.

그렇게 승곤이 차례가 왔다. (승곤이는 그때 당시 내 아삼륙이었다.)


승곤 : “미래에서 온 준호야, 내 미래는 어때?”

사실 승곤이는, 24살 때 나와 절교한 친구다.

(절교 이유 : 나의 심술로 시작된 다툼)

나의 가장 신중한 목소리가, 승곤이와 나의 미래에 대해 이야기를 시작한다.

나 : “승곤아, 너는 고등학교 들어가서도 나랑 계속 연락하고 같은 독서실에도 다닐 거야. 서비스 많이 주는 노래방에서 같이 노래도 많이 부르며 신나게 놀기도 해. 가끔 치고받고 싸우기도 하는데, 다음날이면 또 아무렇지 않게 만나서, 멋진 어른이 되기를 기대하며 같이 시간을 보내. 군대 들어가서도 꾸준히 연락하고, 휴가 날짜 맞춰서 같이 술 한잔 하기도 해. 근데 24살 어느 날, 우리는 싸우고 다시는 안보는 사이가 돼”


승곤 : “그래? 우리가 무엇 때문에 싸우고 틀어져?”
승곤이는 이해할 수 없는 표정으로 내게 묻는다.


나 : “혜화 역 주위 유명한 파전집에서 우리는 평소처럼 술을 마시고 있었어. 근데 승곤이 네가, 갑자기 춤을 정식으로 배우고, 나중에서는 백 댄서가 되는 게 꿈이라고 말했어. 그때 나는 너의 꿈을 크게 비웃고 다그치기 시작했어. 24살 먹고 무슨 춤이냐, 지금 다니고 있는 학교나 열심히 다녀라, 부모님 억장 무너지는 소리 하지 말아라,라고”


승곤 : “넌 미래의 나에게 정말 심한 말을 했구나! 그걸 듣고 난 뭐라고 하든?”


나 : “화를 내며, 친한 친구가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냐고 했지. 용기 내서 내 꿈을 얘기한 건데, 어떻게 그렇게 매몰차게 얘기할 수 있냐고. 하지만 난 사과를 하지 않고, 도리어 화내며 널 쏘아붙였어. 더 이상 헛소리하지 말라고, 꿈은 무슨 꿈이냐 4살 먹은 어린애도 아니고, 분위기는 급속도로 냉각됐고, 우리는 친한 친구에서 모르는 사이보다 못한 관계가 됐지”


나는 안타까운 기색을 보이며, 승곤이에게 말했다. 그리고 승곤이는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승곤 : “그래 우리가 그렇게 싸웠다고 치자. 근데, 그러면 사과하면 되잖아. 그 후로 서로 아무도 연락 안 한 거야?”


나 : “우리가 꿈꾸던 관대한 어른은 거기 없었어. 이상하게 어른이 되면 자기가 세운 기준에 벗어나는 건, 정말 꼴도 보기 싫어지거든. 자연히 내 기준밖에 있으면 배제하게 되고, 게다가 쓸데없는 자존심마저 강해지지. 아무튼 지금이라도 사과할게. 네가 아직 겪은 일은 아니지만, 나 때문에 기분 나빴다면 정말 미안하다. 내 잘못이야.”


가슴속에 응어리져 있던, 6년 만의 사과를 내뱉고 힘이 빠졌다. 

다퉜지만, 다툰 이유를 모르는 아이러니한 상황에서 한 사과이긴 했지만… 마음은 후련했다. 

더 늦기 전에 꼭 했어야 했던 일이었다.


승곤 : “야 됐고, 와서 내 바자회 물건이나 사라”
승곤이는 물건이 안 팔린다며, 내게 물건을 살며시 내민다.


승곤 : “동전지갑이야. 원래 2000원에 파는데 너한테는 특별히 1500원에 줄게”


한 달이면 털이 다 빠질 것 같은, 털 동전 지갑이다. 어쩔 수 없이 주머니에 있던 2000원을 내민다. 
승곤 : “거스름돈 500원은 동전지갑에 넣어서 준다. 나중에 안 거슬러 줬다고 하지 마!”


500원이 든 동전지갑을 어색하게 받는다. 그리고 반짝이며 잠에서 깬다.


어머니 : “괜찮니? 땀이 많이 났구나. 악몽을 꾼 모양이구나”
걱정 스런 어머니의 목소리다.


나 : “괜찮아요 어머니, 악몽이 아니라 아주 기분 좋은 꿈을 꾸었어요.”
어머니를 안심시키며 얘기한다.


어머니 : “항암치료는 1시에서 2시로 미뤄졌다고 하는구나. 의사일정이 바뀌었다나 뭐 래나, 아무튼 조금만 버티자 아들”


나 : “네! 어머니 열심히 이겨 낼 게요”


어머니 : “참 승곤이라는 친구한테서 연락 왔더라, 네 소식 듣고 걱정돼서 연락했대. 이따가 치료 끝나고 통화해 보렴”


복슬복슬한 털을 둘러싼 동전지갑이 내 손에 쥐여있다. 

딱딱한 감촉이 느껴지는 거 보니, 거스름돈을 잘 받아왔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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