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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글 500개 돌파기념 아무렇게나 써보기


난 불완전한 인간이다. 작은 일에도 잘 으스러지고,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레이스의 1등인 자신을 상상하고, 음흉하고 잔인한 생각에 쾌락을 느끼면서, 그런 자기를 하늘에서 내려다보며 스스로 뺨을 치며 자책하고, 목 뒤에 떨어진 내 머리카락을 벌레로 착각하여 화들짝 놀라고. 어쩌면 난 백치가 아닐까. 난 늘 불안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걱정을 사서 하는 자신의 성격에 자책하던데, 그 자체로는 문제 될 게 없다. 많은 걱정은 오히려 많은 미래를 볼 수 있게 해 준다. 그리고 미리 하는 하나의 걱정은 더욱더 다양한 시뮬레이션을 그려줄 수 있다. 그러니깐 걱정을 많이 한다고 해서 꼭 나쁜 건 아니지 않을까. 당신이나 나나 가장 큰 문제점은 게으름, 결국 게으름이다. 걱정이 만들어준 두려움은 낭떠러지로 떨어지기 직전의 당신에게 소리친다. 행동하라고. 떨어질 것 같으면 정신만 차릴게 아니라, 주위에 있는 돌부리를 찾아서 새끼손가락으로라도 잡으라고. 나는 지금도 걱정 한가득 몸뚱이를 증오한다. 그런데 증오만 할 뿐 흔들리는 생각에 속절없이 항복하여 아무것도 하지 않은 나 자신을 더 증오한다. 답답하다.



다들 스트레스는 잘들 풀고 계신가. 자신들만의 스트레스를 푸는 방법이 있으신가? 자기 각자만의 비우는 방법으로 쓰레기통 비우듯이 깔끔하게 지워지면 좋으련만. 안타깝게도 우리는 쓰레기통 바닥에 남은, 옅은 자국만은 지우지 못한다. 나는 그렇게 나만 알고 있는, 아직 완전히 없어지지 않은 스트레스와 상처마저(그것이 비록 삶에 아주 작은 부분이라 할지라도) 조금씩 쌓여가는 게 무섭다. 그래서 아예 기피한다. 아이러니하게 20대를 맞이한 친구가 내게 20대를 살아가는 조언을 구한다면, 당연히 여러 가지를 도전하라고 말할 것이다. 그러면서 속으로는, 그가 쌓아 올릴 옅은 스트레스 자국들이 무서워진다. “하고 싶은 거 다 해봐, 근데 사실 네가 받을 상처에는 나 책임 못 져”



티스토리를 시작하게 된 계기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나는 티스토리 블로그의 존재 자체를 몰랐다. 그동안 구글링을 하면서 수많은 티스토리 블로그를 들어갔으면서도 ti로 시작하는 도메인에는 무감각했다. 블로그는 네이버 블로그만 존재하는 줄 알았다.

작년 4월 나는 더 이상 떨어질 곳이 없다고 위안하면서도, 사실 더 깊은 심해로 떨어질 무렵, 그냥 갑자기 무언가 쓰고 싶어졌다. 그게 말이 되냐고? 당신의 의문은 너무나 당연하다. 왜냐하면 지금의 나도 납득이 안될 확실한 느낌이었기 때문이다. 그냥 무언가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확히 말하면 무언가를 써야 숨통이 트일 것 같았다. 그때의 나는 무언가를 써야만 앞으로의 살날을 기대할 수 있었다. 적절한 산소호흡기를 찾다 보니 나온 것이 티스토리 블로그인 것이다. 근데 왜 네이버 블로그를 안 하고 티스토리 블로그를 했느냐? “네이버 블로그는 너무 흔하고, 티스토리 블로그는 적당히 흔한 것 같아서” 이 단 하나의 문장으로 블로그 선택을 마쳤다. 뭔들 중요하냐. 지금 당장 키보드를 두드릴 놀이터만 있으면 됐을 터. 



아니 그렇게 뭐가 쓰고 싶으면, 그냥 A4용지 하나 두고, 아니면 모니터에 word 띄어놓고 그냥 막 싸질르면 될 거 아니야? 그냥 공유하면 재밌을 거라 생각해서, 그리고 저장해두기 편한 도구가 블로그만 한 것이 없을 거라 생각하여, 티스토리를 선택한 것이다. 내 생각을, 내가 좋아하는 노래를, 영화를, 책을, 공유하고 싶었다. 답답함도 큰 공헌을 했다. 알려지지 않은 많은 콘텐츠 중에는 참 좋은 것들이 많다. 그것들은 장담컨대 마니아틱 하지 않다. 마케팅의 차이지 넘치는 대중성과 충분한 예술성이 겸비된 콘텐츠들이야 너무나 많다. 잘 알려지지 않은 좋은 것들을 공유하고 싶었다.


그런데, 이렇게 불순물 하나 없는 순수한 의미의 글 싸지르기로 시작한 티스토리 블로그에 욕심이 생겼다. 나에게는 꽤 적지 않은 관종끼가 있다는 것을 깜빡한 것이다. 그렇게 방문자 수에 집착하기 시작했다. 물론 방문자 수는 티스토리 초반 운영의 훌륭한 동기가 되어준다. 1일 1포스팅이라는 약속이 쓰러질 무렵, 앞자리 수가 달라진 방문자 수로 다시금 포스팅을 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나의 순수한 의도는 녹아들어 가는 비누처럼 서서히 마모해져 갔다. 키워드를 분석하기 시작했다. 다른 블로그와 비교를 시작했다. 네이버 지식인을 들어가서 사람들이 뭘 원하는지 파악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느 하나 나의 의견과 감정, 성향이 없는 포스팅을 마구 찍어 내기 시작했다. 그렇게 방문자 수는 점점 늘어갔고 지금은 일평 3500에 다다랐다. 대중적인 감성이 거의 없다시피 살아온 나에게는, 꽤 큰 성과이다.



당신이 또 다른 부수입 파이프라인을 만들기 위해 티스토리 블로그를 시작하려고 한다면, 추천해주고 싶지 않다. 해보니깐 블로그로 돈 버는 시대는 끝났다. 돈 벌거면 나가서 아르바이트를 하거나 아니면 유튜브를 시작해라. 티스토리로 어마어마하게 버는 사람을 보았다고? 물론 있겠지. 근데 하나의 블로그는 어려울 것이다. 여러 개 블로그를 괜찮게 운영한다면 꽤 괜찮은 수입이 될 수도 있긴 하겠네.



이렇게 아무런 목적 없는, 누구도 궁금하지 않고 봐주질 않을, 무지성 글쓰기를 해보니 나름 기분이 상쾌하다. 500개 게시글을 쓴 나에 대한 포상이 된 것 같다. 한편으로는 한참 멀었다는 생각도 든다. 도스토예프스끼 5대 장편을 읽고 쫌 깝죽대려는 찰나에, 막상 이렇게 내 생각을 싸질러 보니, 너무 허접해 보인다. 앞으로 더 많이 읽고 생각해야겠다.

500개. 다시 보니 놀랍긴 하다. 내가 무언가를 이렇게 꾸준히 해본 적이 있었던가? 조심스러운 뿌듯함이 살살 옆구리를 간지럽힌다. 욕심만큼 많이 성장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잘 운영했다.

앞으로 언제까지 티스토리 블로그를 운영할지 모르겠다. 솔직히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은 오래전부터 했다. 지금보다 10배 많은 수입을 창출한다면, 언제까지 운영할까?라는 고민 자체를 안 할 텐데.

언제 스위치가 내려가서 포스팅을 중단할지, 전혀 예상하지 못하겠다. 하지만 조소를 머금고 나를 바라보고 있는, ‘넌 어차피 평생 티스토리 블로그를 해야 해’라는 아주 찝찝하고 거머리 같은 생각이 도대체 언제 자리 잡은 걸까. 아무래도 난 평생 티스토리 블로그와 함께 할런지도 모르겠다. 그나저나 이게 돈… 돈… 돈만 된다면 참 개운 할 텐데. 난 참 시대를 잘못 타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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