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옛날 한 옛날에 몸이 아주 가벼운 거인이 살고 있었어요. 있잖아요. 그 거인은 얼마나 가볍냐면요. 바람만 있으면 이 거인은 전 세계 어디든 여행할 수 있을 정도예요. 심지어 바람도 조절할 줄 알아서 중국에서 서울, 이탈리아, 아르헨티나까지, 전 세계 어디든 갈 수 있답니다. 한마디로 이 거인 자체가 비행기이고, 여권이고, 승무원인 셈이라 할 수 있어요!
가벼운 거인에 대해 더 자세히 묘사해볼까요? 누워있는 초승달처럼 시종일관 웃고 있는 눈은 우리를 홀리게 하고요, 과하지 않게 오뚝한 코도 예술이고요, 스크루 바 액상을 바른 것 같은 입술은, 남자인 저도 이상한 생각이 들만큼, 섹시하답니다! 성격은 어쩜 또 그렇게 완벽한지, 모든 게 완벽한 이 거인은 이미 월드스타 반열에 올라와 있답니다.
“이 거인을 보고 있으면 뭐든지 다 이룰 수 있을 거 같은 자신감이 절로 생겨요!!”
(이탈리아에 사는 알베르토 씨)
“저만 보기 아까운 거인이랍니다!! 거인을 보고 느낀 행복을, 많은 사람들도 경험했으면 좋겠어요”
(중국에 사는 웡 씨)
근데 어제, 아주 놀라운 일이 벌어졌어요! 제가 즐겨가는 동네 대중목욕탕을 갔는데, 그 거인이 있지 모예요! 누구에게도 말을 먼저 걸어본 적 없는 저는, 용기 내 말을 걸었어요
나 : “저… 안녕하세요! OO 씨 맞으세요?”
가벼운 거인 : “네!! 맞아요”
저는 떨리는 마음에 어버버 하다가, 이 기회를 놓쳐선 안 되겠다 싶어서, 그만 이상한 부탁을 하고 말았어요.
나 : “만나 뵙게 된 게 너무 영광이라서 그런데, 죄송하지만 제가 등 좀 밀어드려도 될까요?”
가벼운 거인 : “네 그럼요! 마침 등 밀어 줄 사람이 필요했거든요!”
바보 같은 부탁에도, 가벼운 거인은 흔쾌히 수락해줬어요.
저는 등을 밀어주면서 이런저런 질문을 하였어요.
‘지나치게 가벼운 몸이 불편하지는 않냐?’
‘여자 친구는 있냐?’
‘밀폐된 공간을 좋아하는지? 탁 트인 공간을 좋아하는지?’
‘밀떡인지, 쌀떡인지? 부먹인지, 찍먹인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며, 그의 등을 밀어주는 도중, 그의 목 뒷부분에 뽈록한 감촉이 느껴졌어요.
자세히 살펴보니, 잘려 있는 붉은색 뿔 두 개가, 어색하지만 적절하게 달려있지 않겠어요?
순간 멈칫한 저는, 뒤돌아 저를 바라보는 그 아이와 눈이 마주쳤어요. 그리곤 그 아이의 눈이 말했답니다!
‘못 본 척하라고, 오늘 본거 소문내면, 당신을 죽여버릴지도 모른다고’
나 : “오늘 만나서 반가웠어요. 앞으로도 좋은 활동 부탁드려요”
가벼운 거인 : “네 저도 즐거웠습니다. 계속 응원 부탁드립니다”
어제는 정말 잊지 못할 하루였어요!! 친구들에게 잔뜩 자랑할 거예요. 근데 같이 사진 못 찍은 건 쫌 아쉽긴 하네요. 사인이라도 받을 걸 그랬네요.
근데 이상하게 몸이 쫌 으슬으슬 거리네요. 열도 나고 기침도 나오네요. 오늘은 집에서 쉬어야겠어요.
그럼 이만. 오늘 말씀드린 건 꼭 비밀로 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