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저녁에 먹고 남은 메밀 막국수를, 냉장고에서 꺼냈습니다. 절반 이상이 남아 있네요.
이 막국수는 아버지와 함께 먹었던 메밀 막국수 입니다.
닭다리를 먹고 싶었던 아버지의 의견을 고사한, 내 의견으로 시작하여 쿠팡 이츠로 배달 시킨 메밀 막국수였죠.
전 다이어트를 한다며 매우 맛없게 먹었습니다. 충분히 메밀 막국수가 맛있었는데 말이죠.
그래서 아버지와 같은 책상에서, 유로 2024 하이라이트를 보며 맛있게 먹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전 그렇지 않았죠. 아버지는 티비 앞에 높인 책상에서, 전 식탁에 따로 앉아 매우 맛 없는 표정을 지으며 메밀 막국수를 먹었죠.
이내 몇 젓가락을 먹더니, 저는…
“어제 많이 먹었더니, 많이 못 먹겠네요.” 라고 아버지께 말씀드리고, 저의 방으로 도망치듯 들어갔죠.
그 다음 날, 그러니까 아버지가 부산으로 내려가신 오늘 밤, 어제 반 쯤 남은 메밀 막국수를 냉장고에서 꺼냈습니다.
저에게 꽤 맛있는 음식으로 분류되어 있는 메밀 막국수가 냉장고에 있음에 충분히 기뻐하며, 젓가락으로 면을 입 안에 넣는 순간, 이런! 제 혀와 뇌는 ‘내가 먹어 본 면 중에 가장 맛없고 탄력 없는 면’을 마주 했음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결국엔 몇 젓가락 들다가, 하수구에 투하!!! 툭툭 끊기는, 아무런 힘이 없는 면. 도저히 먹을 수가 없더군요. 면이 처음으로 역겹기까지 했습니다.
어쩌면 메밀 막국수가 가장 맛있을 때가 있듯이, 효도도 가장 효도하기 놓은 날과 시기가 있는 것이 아닐까요?
저는요, 지금은 음식물 찌꺼기가 된 메밀 막국수를, 충분히 아버지와 한 책상에 앉아 맛있게 먹을 수 있었습니다.
난 참 어리석은 후회를 많이 하는 사람입니다. 미안합니다. 죄송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