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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숭이의 신랑입장


“으이그 철숭아! 키가 123.4cm도 안되는 주제에, 그렇게 커다란 양복을 입으면 어떡하니?

결혼식이 장난이니? 그래! 하객들에게는 그럴지도? 장난일지도 모르지.

근데 옆에 있는 수진씨는 뭐가 되니? 미안하지도 않니?

너 설마 리허설 때도 그거 입고 한 거 아니지?

반쯤 남은 소매와, 바지 역할을 못해 걷기를 방해하는 이빠이 남은 바지 좀 봐..어휴

이따 절할 때 넘어지면 큰일 난다? (바지 꽉 잡고 절해라!)”


“아이고 좀 어른 답게! 어깨 쫙 피고 입장해라. 너 장인어른이 만든 작품을 망칠 셈이니?

지금 여기가 321동 앞 놀이터가 아니 잖니?

왜 혼자 잠자리채 들고 실 잠자리를 찾는 멍청한 표정과 걸음걸이로 신랑 입장을 하는 거니?

너한텐 오늘 두리번 거릴 자유가 없는 걸 뻔히 알면서 왜 이렇게 이곳저곳을 보는 거니?

정면을 딱 응시하고 신랑 입장을 해주지 않으면, 어디 덧나니?


그렇게 신랑을 맹렬히 비난하던 나는, 잠시 안경을 벗어 보았다.

그제서야 내가 알고 있던 평범한 결혼식 장면이 펼쳐진다.

거기에는 ‘어른의 양복을 입은 초등학생’도 ‘주공 아파트 뒤에서 잠자리를 잡는 어린이’도 없었다.

그리고 나는 다시 정신을 차리고 신랑을 찾아 보았다.

근데 그 신랑이 이철숭이라는 것을 다시금 깨달은 그 순간,

난 다시 ‘나한테만 보이는 이철숭 필터’가 있는 안경으로 결혼식을 보며,

신랑을 향한 비난을 맹렬히 쏟아냈다.


“으이그…철숭아…신랑이 그게 뭐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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