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월의 어느 겨울날, 평소보다 더 힘들었던 야간근무를 마치고 진통하고 있는 누나를 향해 갔지. 민설아! 그때 내 눈에는 아주 충격적인 세상이 펼쳐졌단다. ‘사람에게 어떻게 저런 아픈 목소리가 나올 수 있을까?’라고 뇌까릴 만큼 여러 명의 산모들의 고통에 대한 원망의 외침이 나를 짓눌렀어. 물론 그중에 우리 누나도 예외가 아녔음을 확인할 수 있었어. 신음하는 누나를 보고 나는 아무 말도, 심지어는 아무 감정도 느낄 수 없었단다. 너무나 당황했기 때문이지. 너무나 당황했지. 민설아 너는 그때 누나를 엄청 아프게 했단다. 아주 아주 말이야.
그렇게 그곳을 난, 도망치듯이 나왔어. 그리곤 야간 근무에 대한 피로와 누나에 향한 불쌍함보다, 더 큰 무언가가 몰려왔어. 그걸 뭐라고 표현해야 가장 적절할까? 슬픔? 피로? 연민? 환희? 그래 그건 바로 ‘새 생명에 대한 압도감’이었어. 우리는 평소 우리의 삶에 감사하곤 하지. 두 발이 달려서 이 땅을 걸을 수 있고, 한 팔로 시원한 아메리카노를 마실 수 있음에. 하지만 그 무엇보다 앞서 우리가 감사하고 경외해야 할 것은, 새 생명이 세상을 향해 나오며 준, 엄마가 고스란히 받은 극한의 고통이야. 누나는 새 새명이 주는 압도감을 어떻게든 버텨내려 노력했어. 민설아 너는 엄마를 아프게 했어. 엄마는 네가 주는 끔찍한 공포를 온몸으로 받아냈어. 그건 세상에 어떠한 유능한 해결사도 처리할 수 없었어. 오로지 엄마만이 느끼고 견뎌내야 하는 것이었어.
나는 울부짖는 누나를 향해, ‘힘내’라는 말을 해주었지. 아마 내가 그때 말 한 ‘힘내’는 세상에서 가장 무기력하고 무의미한 ‘힘내’였을지도 몰라. 어깨가 푹 처진 나는, 은심이 이모 옆에 힘없이 앉았어. 그리고 엉엉 울었어. 추하지만 순수한 눈물을 펑펑 쏟았어. 갑자기 내 돌아가신 엄마가 보고 싶었기 때문이었지. (너에게는 할머니지) 사실 보고 싶은 거 보다는, 만약 너네 할머니가 누나 옆에 있었다면?이라는 가정을 빠르게 하면서 계속 울었어. 아마 너네 할머니가 누나 옆에 있었다면, 누나는 그 고통을 할머니에게 조금은 나누어 줬을 거야. 그리고 너네 할머니는 나를 고통스레 낳던 노하우를 삼아, 누나의 고통을 어떻게든 나누려 했을 거야. 그건 할머니만 가능했을 거야. 나는 물론, 매형, 할아버지도 불가능할 거야. 그 순간, 나는 하느님을 원망하기도 했어. 인간적으로 누나가 출산할 때는 잠깐만이라도 우리 엄마를 빌려줘야 하지 않겠니? 그 정도는 천주교 복지의 일환으로 하셔야 된다고 봐.
내 조카 민설아! 다행히 네가 무사히 태어났어. 산후조리원?이라고 해야 하나. 나는 그곳으로 갔어. 다행히 누나도 많이 좋아 보였어. 세상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통증을 느끼고 그걸 버틴 사람은, 확실히 무언가 달라 보였어. 그 순간 너희 엄마가 존경스러워 보이기까지 하더라.
그리고 삼촌은, 너를 처음 보았어. 근데 내가 그렇게 두려워했던 ‘새 생명에 대한 압도감’은 어디에도 없었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을 상상해본 적 있니? 갓 태어난 너는 내가 상상한 가장 소중한 것 이상의 존재였어. 너무 오버하는 것 아니냐고? 어떻게 이 감정을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네. 어떻게 쓰던지 내가 그때 너를 처음 봤을 때 느낌을 글로 표현하기란 애초에 불가능할지도 몰라. 그만큼 나는 너무너무 기뻤어.
조카 민설아. 언제쯤 네가 이걸 읽을 수 있을까? 나는 이렇게 거대한 프로토콜의 흐름에 이 글을 발표하지만 정작 누나에게도, 너에게도 이 글을 썼다고 알리지 않을 거야. 나는 운명의 흐름을 믿지 않지만, 그래도 이 포스팅이 너에게 도달하는 운명의 힘만은 조금 믿어볼까 한다. 만약 이 삼촌이 그 힘의 길을 조작한다고 치면, 네가 인생에 대한 고민이 많을 시점에 이 글이 너의 눈에 들어오길 바란다. 그리고 힘내길 바란다 민설아. 네가 베푼 배려에 오히려 세상이 매몰 차게 굴어도 그러려니 생각하렴. 다들 철저히 지들밖에 모른단다. 아무도 너를 이해해주지 못한다는 감정이 든다면, 그럴수록 더욱더 너 자신에게 의지 하렴. 너의 가장 소중한 친구는 너 자신이란다. 굳이 싸움을 거는 저 사람을 증오하기보다는 불쌍해 하렴. 그 사람은 너보다 한참 약한 사람이거든. 목표한 바를 이루지 못했다고 너무 슬퍼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그럴 때는 시원하게 욕 한번 내뱉고 훌훌 털어버리렴.
사랑하는 내 조카 민설아. 부족한 삼촌의 글을 읽어줘서 고맙다. 너는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에게 가장 귀중한 존재란다.
나중에 크면 명동으로 같이 쇼핑이나 하러 가자. (민채도 같이)
— 민설이 팬 1호 삼촌이